공지 '9급' '취집' 내몰리는 지방대생의 비애

페이지 정보

작성자
누리미디어
조회
1,297회
작성일
18-07-13 09:33

본문

8d5652acecf8c2c21c2862faf34ea2fa_1637643996_2563.png


"지방대생은 앎에 대한 의지가 아니라 알지 않으려는 의지, 자기계발하려는 의지가 아니라 자기보존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습속의 왕국! 이들에게는 세상이 온통 알 수 없는 혼돈이 아니다. 습속을 따라 살아가면 세상이 너무나 자명한 사회적 사실로 다가온다. 평범한 사람이 되어 살아갈 것!"

이런 말을 들으면 얼마간 반발감부터 든다. 성급한 일반화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다. 다음 문단에 이르러서도 마찬가지다. 한번 보자.

"지방에서는 적당주의를 실천하며 살아가도 큰 무리가 없다. 이런 삶이 가능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가족의 뒷받침이 있기 때문이다. 부모와 함께 살면 주거비와 식비가 해결된다. 결혼해서 독립한다고 해도 수도권보다 싼 주거비가 이점으로 작용한다."(267쪽)

흥미로운 얘기다. 그러나 다시금 의문이 인다. 아무래도 이 또한 과한 단정 같아서다. 세상에 지방대생 혹은 지방대 졸업생이 얼마나 많은가. 그걸 저리 간단하게 일반화해도 된단 말인가. 그런데 말이다. 우린 아직 저 주장이 나온 맥락까지는 더듬어 보지 않았다.

때는 2017년 초여름. 논문 하나가 모처럼 사회학계를 뒤흔들었다. 제목은 '복학왕의 사회학: 지방대생의 이야기에 대한 서사 분석'. 최종렬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가 쓴 것인데, 계기는 이렇다. 우연히 기안84의 웹툰 '복학왕'을 봤다. 다소 과장은 있으나 가만 보니 지금 가르치는 내 제자들 얘기였다. 10여 년간 가르치고 관찰해온 그 무수한 지방대생들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논문이었는데, 반향이 자못 컸다. 학술지식 플랫폼 'DBpia'에 논문 상위 1%를 기록했다. 한국대학신문과 DBpia가 공동 기획한 첫 번째 '이달의 연구자'로도 선정됐다. 어느 기자의 연락으로 인터뷰 또한 성사되면서 그의 논문은 학계 너머 대중에게까지 널리 알려진다.

'복학왕의 사회학'은 그가 이 논문을 대폭 보강해 단행본으로 낸 것이다. 그래서 논의 범위가 보다 넓다. 지방대 재학생뿐 아니라 졸업생들의 삶의 면면을 더듬었고, 이들의 소이연을 보고자 부모 세대까지 분석했다. 이를 위해 가족 내에서 문화자본이 전승되고 체화되는 '아비투스' 개념, 상징적 '구별 짓기' 같은 피에르 부르디외의 사회학적 개념 등이 도입되는데, 이 모두 어렵지 않게 풀어 설명된다.

저자에 따르면 지방대생에게는 각자도생·생존경쟁이란 표어가 부합되지 않는다. 패배주의에 짙게 물들어서다. 이들에겐 '해봤자 안 될 텐데'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같은 자조와 체념적 태도가 이미 깊게 뿌리내려 있다. 지방대 졸업장은 사는 데 도움이 안 된다고 본다. 외려 커다란 멍에요, 족쇄일 뿐이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이 '무스펙 전형' 운운하지만 어차피 경쟁자는 많고 실패할 게 뻔하다고 보기에 시도조차 안 한다.

부모 등쌀에 9급 공무원을 준비하고 토익 학원도 다녀보지만 잠시일 뿐이다. 상처받지 않으려면 몰입하지 않는 게 낫다. 몰입하지 않으니 될 리도 만무하다. 그럼 이들이 지향하는 가치란 뭘까. "지방대생에게 최고의 가치는 가족의 행복이다. 현재는 부모에게 최대한 손 벌리지 않는 것이 가족의 행복을 구성하는 길이다. 앞으로는 어떻게든 평범한 가족을 구성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다."

졸업생도 앞선 얘기의 연장이다. 상경한 사람은 격렬한 경쟁 아래 생존주의자 중 한 명이 된다. 그러다 견디지 못하면 지방으로 다시 내려온다. 지방 회귀. 가족이 최고이므로, 적당한 시기 결혼해 부모님께 효도하고 가족의 행복을 도모해본다. 물론 이 모든 것엔 전제가 있다. 세대 사이 연대가 이뤄지는 지방적 특수성이다. 지방대생 부모와 자녀 간에는 가부장제에 기반한 보수주의적 가족주의가 대물림된다고 저자는 본다.

물론 여하한 분석이 정확하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지방 청년들에 대한 하나의 경향성을 도출해냈다는 건 값진 성취로 다가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은 정말이지 술술 읽힌다. 가만히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내 얘기인데' 싶은 대목도 더러 발견될 것이다.
 


[출처 : 매일경제]